50화. 여름, 성장

50화. 여름, 성장
6월 진료실 오전. 창밖은 이미 여름이다.
희원이를 처음 데리고 이쪽 병원들을 찾아다니던 게 2년 전이다. 그때 아이는 두 돌을 갓 넘겼고, 나는 의사이면서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같은 과 선배에게 전화를 했고, 연락이 닿는 선생님들을 찾아갔고, 그렇게 치료가 시작됐다. 아이의 이름이 치료 차트에 올라가던 날, 나는 진료실 안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보호자의 자리가 어떤 건지 알았다.
두 해가 지났다.
달라진 것들이 있다. 희원이는 이제 두 세 단어를 붙여 말한다. 원하는 것을 말로 요구하는 날이 늘었다. 치료사 선생님 이름을 부른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눈을 맞추고 웃는다. 블록을 쌓다가 무너지면 금방 다시 시작한다. 쌓아놓은 탑이 무너졌을 때 선생님한테 "잘했다"고 말했다. 할머니 전화에 지난 주말 이야기를 꺼냈다. 1년 전에는 그것들 중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안 온 것들도 있다.
또래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건 아직 먼 이야기다. 질문에 바로 대답하는 날보다 침묵인 날이 더 많다. 높임말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끄덕임이나 고개 젓기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도 여전히 드물다. 어디까지가 발달의 순서이고, 어디서부터가 기다림인지, 나는 매번 그 경계 앞에서 멈춘다.
오늘 진료실에서 만난 부모가 있었다. 아이가 처음 발달 우려를 들은 지 얼마 안 됐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나는 설명을 했다. 치료의 방향, 일상의 전략,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무엇은 기다려야 하는지. 말은 차분하게 나왔다. 이 일을 오래 해온 사람처럼 말했다. 사실 나는 아직도 매일 배우고 있다.
집에 와서 희원이를 봤다.
아이는 거실에 앉아 자동차 바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돌아가고 저렇게 하면 안 돌아가는 걸, 혼자서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었다. 누가 보면 단순한 반복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그 안에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이 아이는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이다.
조바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또래 아이들 소식이 들려올 때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안다. 언제쯤 희원이도 친구 이름을 부를까. 언제쯤 "오늘 뭐 했어?" 같은 질문에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이 아이의 하루가 더 쉬워질까. 그 질문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2년 전을 생각한다.
그때 나는 이 정도도 될까, 싶었다. 눈맞춤이 이 정도 될까. 말이 두 단어라도 이어질까. 이름을 불렀을 때 한 번이라도 돌아볼까. 그 소박한 바람들 중 일부가, 지금은 현실이다. 기억해야 한다. 오늘의 불안이 2년 뒤의 현실을 다 예측하지 못한다는 것을.
두 해를 버텼다. 아이도, 나도.
여름이 오면 아이는 네 살이 된다. 두 해 뒤에는 여섯 살이 된다. 그 시간이 오면 나는 또 지금 이 여름을 떠올리겠지. 바퀴를 들여다보던 이 저녁을. 조용히 혼자서 무언가를 이해하려던 이 아이를. 오늘을 기억하기로 했다. 이 조용하고, 아직 많은 것이 열려 있는 오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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