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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익명· 2026년 6월 9일

49화. 같은 손으로

49화. 같은 손으로

49화. 같은 손으로

진료가 끝난다는 건 단순히 마지막 환자가 나가는 일이 아니다. 오후 진료의 마지막 차트를 닫을 때,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앉아 있는다. 청진기는 아직 내 목에 걸려 있고, 조금 전까지 기침 소리와 질문들로 가득했던 진료실은, 그 소음이 빠져나간 자리를 침묵으로 채우고 있다. 이 몇 분이, 나에게는 일종의 준비 시간 같은 것이다.

조금 있으면 문이 열린다.

아내가 희원이를 데리고 오는 게 아니다. 희원이가 진료실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온다. 스스로. 이 복도를 아는 것처럼, 이 냄새가 낯설지 않은 것처럼. 그게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병원이 아이에게 익숙한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 안도인지 비통인지.

만 세 살 일곱 달. 희원이의 눈은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면으로 오지 않는다. 나는 그 시선의 궤적을 이미 알고 있다 — 의사로서도, 아빠로서도. 눈이 마주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나를 모르는 게 아니다. 희원이는 이 공간의 냄새를 알고, 치료사 선생님의 목소리를 알고, 내 발소리를 안다. 그냥 내 쪽을 보지 않을 뿐이다. 그 차이를, 나는 이제 안다.

오늘도 채혈이 있다. 이번 달 세 번째다. 면역 수치를 보기 위해, 알레르기 반응 패턴을 추적하기 위해. 내가 직접 한다. 다른 스태프에게 맡기지 않는다. 이건 원장의 고집이기도 하고, 아빠의 욕심이기도 하다 — 이 아이의 팔에 바늘을 꽂는 일만큼은, 내 손으로 하고 싶다는.

바늘을 잡는 손이 떨리지 않는다. 수백 번 해온 일이다. 그런데 희원이의 팔을 잡는 순간, 손목 안쪽의 가는 핏줄을 찾는 순간 — 나는 잠깐 멈춘다. 기술이 멈추는 게 아니라, 마음이 멈춘다. 이 작은 팔이 세 살짜리 내 아들의 팔이라는 것을, 매번 새롭게, 처음 보는 것처럼 실감한다.

희원이가 몸을 뒤로 젖힌다. 팔을 당기려 한다. "싫어." 단 두 글자. 문장도 아니고, 설명도 아니다. 그냥 싫다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히 분명하다. 나는 한 손으로 부드럽게 팔을 잡고, "조금만" 하고 말한다. 의사가 하는 말인지, 아빠가 하는 말인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채혈이 끝나면 언어치료실로 넘어간다. 4월부터 시작해서 오늘이 마흔아홉 번째 날이다. 일요일을 빼고 거의 매일. 언어치료에 전산화 인지재활치료까지. 치료사 선생님이 그림 카드를 내밀면, 희원이는 잠시 그것을 바라본다. 눈이 카드 위에 머무는 그 짧은 순간을, 나는 창문 너머로 지켜본다. "이거." 아이가 말한다. 카드를 향해 손을 뻗으면서. 그게 전부다. 그런데 그 단 한 마디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담겨 있는지 —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진료실로 돌아오는 길, 나는 다시 흰 가운을 여민다. 같은 가운, 같은 청진기, 같은 진료실. 오전에 환자들을 보던 그 손으로 방금 내 아들의 팔에 바늘을 꽂았다. 의사의 손과 아빠의 손이 같은 손이라는 것이, 이상하게 나를 흔든다. 매일.

어떤 날은 의사가 아빠보다 강하다. 감정을 접어두고, 수치를 보고, 다음 치료 계획을 세운다.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어떤 날은 아빠가 의사를 이긴다. 바늘을 꽂기 전 희원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울음을 참는 눈을 보는 순간, 나는 그냥 아빠가 된다. 무너지고 싶은 아빠.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매일 서 있다. 가운을 입은 채로. 청진기를 목에 건 채로. 이중의 마음을 하나의 몸에 담은 채로.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 희원이가 이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익숙한 듯, 낯선 듯, 걸어 들어오기를.

⚠️ 면책조항 (Disclaimer): 본 웹툰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형식의 콘텐츠입니다. 특정 치료법의 효과를 보증하지 않으며, 모든 의료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별 환자의 치료 결과는 다양할 수 있으며, 본 콘텐츠의 사례가 일반적인 치료 결과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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