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마인드맵

69화. 마인드맵
활동지 한가운데 바나나가 그려져 있었다.
마인드맵 과제였다. 중심 그림에서 선을 뻗어 떠오르는 것들을 적어나가는 활동.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여주었다. 노란색, 달콤해요, 원숭이가 좋아해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필을 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첫 번째 칸에 적은 건 초록색이었다.
"바나나는 초록색이기도 해요."
선생님이 잠깐 멈추었다. "바나나는 노란색이야." 친절하게, 틀렸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유도했다. 아이는 연필을 내려놓지 않았다. "아직 안 익으면 초록색이에요. 마트에서 봤어요."
나는 구석에 앉아 그 대화를 듣고 있었다.
맞는 말이었다. 수입 바나나는 덜 익은 채로 들어와 유통 과정에서 익기 때문에, 마트에서 초록빛 바나나를 만나는 건 흔한 일이다. 아이가 관찰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활동지의 맥락에서 기대하는 정답은 노란색이었다.
아이는 둘 다 썼다. 노란색, 초록색.
나는 그걸 보면서 한참 생각했다. ASD 아이들은 종종 '틀린' 대답을 한다. 맥락을 읽지 못해서, 상황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해서. 그게 어려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날 아이가 초록색이라고 말한 건, 맥락을 못 읽은 게 아니었다. 자기가 본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직접 관찰한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꺼내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달랐다.
세상에는 정해진 답이 있는 질문들이 있다. 바나나 색깔처럼. 사람들이 동의하는 보편적인 답. 그 답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 답 너머를 볼 줄 아는 것, 자기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꺼내놓을 수 있는 것, 그것도 중요하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정해진 답을 잘 맞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만, 초록색 바나나를 기억하고 있다가 말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까.
아이는 마인드맵을 다 채웠다. 노란색, 초록색, 달콤해요, 껍질이 있어요, 원숭이, 길쭉해요, 오메가3에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 칸에 한참 생각하다가 혼자 하나를 더 적었다.
엄마가 좋아해요.
나는 그 칸을 보고 웃었다. 선생님도 웃었다. 맞는 답이었다. 정해진 정답에 없는, 그래서 더 정확한 답.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 아이만의 바나나 이야기. 그 마인드맵은 교과서에 나올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가 다 담겨 있었다.
나는 그 활동지를 사진으로 찍어 보관했다. 노란색, 초록색. 둘 다. 정답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아이가 오늘 연필 한 자루로 가르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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