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발달검사

31화. 발달검사
검사실 복도 의자에 앉아 평가지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있었다. 진료실에서 늘 그랬듯이, 차분하게. 그런데 손이 조금 떨렸다.
아이는 안에 있었다. 평가자와 단둘이. 문이 닫혔을 때 나는 한참 그 문을 바라봤다. 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블록 쌓기, 그림 지시, 언어 반응 확인, 눈 맞춤 여부. 수없이 봐온 도구들이다. 내가 직접 활용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지금은 내 아이가 그 앞에 앉아 있다.
나는 의사다. 발달지연이 무엇인지 안다. 그 단어가 어떤 궤적을 따라 아이의 삶에 자리 잡는지도 안다. 그 단어가 아이 차트에 처음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나는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는. 말이 늦고, 눈을 맞추지 않고, 부르면 돌아보지 않는 아이. 내 아이였기 때문에 외면했던 것들이 있었다.
평가 결과지가 내 손에 쥐어졌다. 발달 연령, 항목별 점수, 소견 문장들. 의사로서 읽으면 수치들이다. 언어 발달 지연, 사회성 지표 미달, 비언어적 의사소통 결여. 그런데 아빠로서 읽으면, 그것은 내 아이의 이름 옆에 붙은 문장들이다. 만 2세 10개월. 이 아이가 오늘 검사실에서 블록을 어떻게 쥐었는지, 눈을 어디에 두었는지. 그 모든 것이 숫자로 환산되어 종이 위에 있었다.
소견란에 찍힌 단어. 나는 그 단어를 알고 있었다. 수백 번 읽었고, 설명했고, 다른 부모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 단어가 낯설었다. 내가 아는 그 단어가 분명한데, 다른 무게로 읽혔다. 종이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검사를 마친 아이가 나왔다. 선생님 손을 잡지 않고, 혼자 나왔다. 나를 보고 달려오지도 않았다. 그냥 문을 통과해서 나왔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아이는 시선을 피켰다. 허공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오늘 결과지의 일부였다.
나는 이 자리에서 수없이 진단을 내렸다. 아이 부모 앞에 앉아, 결과지를 펴고, 가능한 한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앞으로 어떤 과정이 있는지. 부모들이 종이를 받아 들고 눈물을 흘릴 때, 나는 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설명을 듣는 쪽. 종이를 받아 드는 쪽. 그제야 알았다. 내가 그동안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그 감정이, 실제와는 얼마나 달랐는지를.
진단은 치료의 시작이다. 의사로서 이건 사실이다. 이름이 붙어야 방향이 생긴다.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어떤 환경이 도움이 되는지,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하는지. 진단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그걸 알면서도, 주차장에서 차에 탄 뒤 한참 시동을 걸지 못했다.
결과지는 가방 안에 있었다. 아이는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울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냥 앉아 있었다. 나는 백미러로 그 얼굴을 한 번 봤다. 그리고 시동을 켰다. 이제부터가 치료다. 오늘 종이에 찍힌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내가 의사라는 사실이 오늘만큼은 짐처럼 느껴졌지만, 내일부터는 그것이 무기가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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