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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익명· 2026년 6월 9일

54화. 혼자

54화. 혼자

54화. 혼자

쓰기 활동지가 펼쳐지면 희원이는 항상 잠깐 멈춘다.

그 멈춤이 무엇인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거부인지, 준비인지, 두려움인지. 한참을 지켜보고 나서야 조금씩 읽히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가늠하고 있었다. 그 짧은 침묵은 평가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활동지에 점선으로 된 글자가 있었다. 따라 쓰는 것이었는데, 희원이가 연필을 쥐고는 선생님을 바라봤다. 선생님이 "해볼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혼자 할 수 있어."

단호했다. 선생님이 옆에서 도와주려는 것을 먼저 막은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 몇 달간 치료실에서 반복된 말이 있었다. "해봐", "혼자 해봐", "할 수 있어." 아이는 그 말들을 흡수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스스로 그 말을 꺼낸 것이었다.

희원이가 연필을 점선 위에 올렸다. 첫 획이 삐뚤어졌다. 지우지 않고 계속했다. 두 번째 획도 비틀어졌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고쳐주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다. 의사로서, 아빠로서 몸에 밴 반사였다. 뭔가 안 되고 있으면 개입하는 것. 하지만 희원이는 "혼자 할 수 있어"라고 했다.

아이를 믿기로 했다.

세 번째 획에서 연필이 점선 밖으로 많이 벗어났다. 희원이가 멈췄다. 나는 또 참았다. 그때 아이가 선생님을 봤다.

"점선 그려줘."

조용한 목소리였다. 부탁이었다. 선생님이 "어디?" 하고 물었고, 희원이가 종이 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선생님이 점선을 다시 그려주었다. 아이는 그 위에 연필을 얹고 천천히 따라갔다. 이번엔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혼자 하겠다고 하고, 어려워지면 도움을 청하는 것. 어른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자존심이 끼어들면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면 중간에 멈추지 못한다. 그런데 아이는 자연스럽게 그 두 가지를 함께 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혼자 했고, 막히는 곳에서 정확히 무엇이 필요한지 말했다.

발달 경과를 기록하는 노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자립과 도움 요청을 구분하기 시작함.' 치료 목표에 있는 항목이 아니었다. 어디서 가르친 것도 아니었다. 희원이가 스스로 배운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독립이란 혼자 모든 것을 해내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혼자 해야 하는지, 언제 도움을 구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었다. 그 경계를 스스로 느끼는 것이었다. 희원이가 오늘 그 경계 위에 서 있었다. 넘어지지 않고, 멈추지도 않고.

혼자서도, 같이도. 그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 면책조항 (Disclaimer): 본 웹툰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 형식의 콘텐츠입니다. 특정 치료법의 효과를 보증하지 않으며, 모든 의료적 판단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개별 환자의 치료 결과는 다양할 수 있으며, 본 콘텐츠의 사례가 일반적인 치료 결과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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